*일본의 검도형

(사사키 히로츠구 49세, 검도연사 6단)
(*주: 다음 글은 검도형을 <검 술 형> <검 리 형> <검 도 형>, 즉 술,리,도라는 세가지 관점에서 고찰한 글로서 유익한 글이 아닐까하여 <검도일본>잡지 2005년 1월호에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사실 승단 시험에 중요한 포션을 차지하는 검도형이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형태만 모방한 경우가 많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거기에 대한 하나의 좋은 착안이 될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글 중에는 일본 문화이므로 우리의 국민감정에는 다소 거북한 말도 있는 것 같으나 좋은 것만 취사선택한다면 무방하리라 생각됩니다.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3본목까지만 있고 나머지는 다음 호에 나온다고 합니다.)


1. 검도형이란 무엇인가?
검도를 시작하여 1-2년 정도, 어린이라면 초등학교의 고학년부터 중학생 정도가 될 때, 반드시 직면하는 것이 <일본검도형>의 연습이다. 지도 선생님으로부터 1급의 심사 혹은 초단 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이 <검도형>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우선은 1본목부터 <형의 수순>을 선도 후도로 나누어 배우게 된다.
그때까지는 호구를 쓰고 죽도를 잡고, 기본이 되는 중단의 겨눔자세로부터의 <머리> <손목> <허리>등의 올바른 타격방법을 열심히 수련해온 사람으로서는, 처음 잡는 상단의 겨눔자세라든가, 그때까지는 배운 일이 없는 <찌름>기술 등을, 평소에 익숙한 죽도가 아니고 약간 만곡된 목도를 사용하여 행하는 것에 적지 않게 당혹감을 가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거기서부터 반드시 <검도형은 무엇 때문에 하지?> 라고 하는 의문이 솟아 오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 검도형의 실정
일본 검도형은 구대일본무덕회가 대정원년 10월에 제정한 것을 1981년 12월에 전일본검도연맹이 그 표현을 현재적으로 다시 쓰고 제정한 해설서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검도 기술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뽑아 모은 것으로, 그 이합을 집합한 것이라 말하여지고 있다. 이것을 충분히 활용하면 실제의 연습시합에도 응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검도형 강습회등에서도 이것을 확실히 연습하므로서, 다음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1) 올바른 예의와 침착한 태도가 몸에 붙는다
2) 자세가 올바르고 동작도 기민하게 된다
3) 상대의 기분과 동작을 관찰하는 눈이 길러진다
4) 기술상의 악습을 제거하고 올바른 기술이 몸에 붙는다
5) 올바른 칼날과 손매무새를 습득하여 정확한 타돌이 몸에 붙는다
6) 올바른 거리와 틈(타이밍)을 얻는 방법에 능숙해진다
7) 타돌이 정확해지고 잔심을 습득한다
8) 기가 단련되어 기합과 발성이 충실해지고 기민경묘한 동작이 몸에 붙는다
9) 마음과 기술의 이합을 습득한다
10) 기위가 높아지고 기품과 품격을 갖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현재의 검도경기의 규정으로서는 작은 소도의 죽도는 사용않고 있는데도 소도의 형이 3본이 있다. 일반적인 검도의 타돌동작은 상급자가 되면 될수록 손목과 팔꿈치를 주체로 한 작고 빠른 타돌방법이 요구되어지는데도, 검도형에서는 양팔을 크게 휘둘러 올리는 동작을 한다면, 검도형을 현대의 죽도의 검도에 살리는 것인가, 그 틀리는 점만 눈에 띄고 오히려 당혹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닐까.
이 때문에 검도형의 연습은 승단심사의 직전에 그 형과 순서를 쫓아서 연습할 뿐으로서, 실제는 앞에서 말한 효과를 형의 연습으로 인하여 얻는다는 실감은 적은 것은 아니가 하고 생각한다.

◈ 검도형에 관한 소박한 의문
많은 검도가에게 <검도형>의 연습을 소홀하게 하기 쉬운 것은, <검도>에 있어서의 동작과 <검도형>에 있어서의 동작이 일견 전적으로 틀린 것으로 보이고, 죽도에 의한 <치고들어가기연습>과 목도에 의한 <형연습>과의 구체적인 공통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아무리 검도형의 연습을 쌓아도, 그 효과가 직접적으로 검도의 상달에 연결되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그 수련에 몸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닐까.
거기서, 우선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검도형>에 대한 <소박한 의문점>에 대하여 생각나는대로 열기해 본다.

검도형의 1본목은 <서로 상단>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까. 확실히 고교생이상의 시합에서 상단의 겨눔자세는 인정되어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검도의 기본은 중단에 있다고 한다면,  본래대로하면 <형>의 1본목은 서로 중단이 되는 것이 자연스런 것이다. 서로 상단의 시합 등은, 고교생, 일반성인의 시합에서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승급심사나 승단심사를 받는 초등학교 중학생도 현재는 이 1본목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사실상 <상단>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상관없는 것이다.
또 이 서로 상단도, 선도는 검도에서도 보통 행하여지고 있는 좌상단인 것에 대하여, 후도는 우상단이다. 왜, 선도와 후도의 상단의 겨눔자세가 틀릴까.
게다가, 이 서로 상단에서부터 선도가 ‘머리’를 치러 오는 것은 왜일까. 일부러 칼로 방어하고 있는 ‘머리’를 치러 오지 않더라도 비어 있는 ‘허리’라든가, 좌우의 ‘손목’을 치는 것이 합리적이다. 거기다가, 선도가 후도의 ‘머리’를 치고 (후도가) 물러난 후에 앞으로 구부러져 머리를 내어미는 쓸데없는 체세가 된다. 검도에서는, 타돌 후에 체세를 무너뜨리지 말라고 가르친다. 설사 과감히 내려 치고 그것을 상대가 물러났다고 해도 앞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허리를 넣어 확실한 체세를 만드는 것이 올바른 것은 아닐까. 하물며 선도는 선생의 위치인 것이다.

이러하듯이 검도형은 조금만 생각하여도 모순 덩어리로 보인다. 따라서, 이 모순을 확실히 해명하지 않는 한 현대검도가로서는 검도형의 수련에 몸을 넣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지 모른다.

◈ 형의 목적과 분류
<형연습>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독특한 방법의 창시자에 따라 연구되어진 검의 기술을 미리 정해진 순번에 따라 몇 번이고 반복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죽도에 따른 기본기의 연습을 하는 <약속연습>을 죽도가 아니고 목도나 칼날이 있는 일본도를 사용하여 행하고, 그것을 실전과 같은 스피드로 수련하는 것에 의해 정묘한 검의 기술을 몸에 붙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형연습>에서 배워 기억한 <기술>은, 그대로의 <형>으로 죽도검도에도 응용이 가능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형>에는 그와 같이 검의 기술을 직접 전하는 것만이 아니고, 기본적인 검의 이합과 그 독특한 방식의 사고방식, 또는 유파의 목표하는 경지와 사상등을 <검의 형>으로 해서 전하여지는 것도 많다. 예를 들어 이천일류에는 유명한 <오방의 형>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만, 이 <형>은 이천일류의 <검기>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무사시가 목표로 하여 도달한 병법의 원리원칙과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오방의 형>의 <형>만을 닮아 보아도 그곳에 무사시의 병법의 신수를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방의 형>은 평소부터의 엄혹한 죽도의 수련과 함께 연습할 때에, 비로소 그 <형>에 내포하고 있는 검의 진리가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형>에는 그것이 전하고 있는 내용과 그 목적에 따라서 몇 가지의 종류가 있다. 거기에서 나는 목적별로 세가지로 분류해 본다.
그 하나는, 검의 <술기> 그것을 전하려고 하는 <형>이다. 적이 이렇게 치러 온다면, 이쪽은 이렇게 대처한다고 하는 검의 <기술>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형>이라 하면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검의 술기를 가르치는 형>이라는 의미로서 <검 술 형>이라 분류한다.
두 번째는, 검의 기본적인 이합, 예를 들어 <간합>이나 <선> 등에 관한 사고방식, 혹은 <공세>의 요체등을 가르치는 <형>으로서, <오방의 형>에는 이러한 내용이 가는 곳마다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검의 이합을 가르치는 형>이라는 의미로 <검 리 형>이라고 분류한다.
세 번째는, 유파로서의 검에 대한 사고방식과 수행에 의해 도달하는 경지, 목적 등을 표현하고 있는 <형>이다. 많은 유파의 경우, <오전>이나 <비전>, <속의 형>등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고, 그 유파로 오랜 수행을 쌓은 사람 외에는 전하여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검에는 안과 밖이 없다>고 한 무사시는 그 내용도 숨기는 일 없이 <오방의 형>에 넣어서 전하고 있다. 이것을 <검의 진리나 목적을 전하는 형>이라는 의미로 <검 도 형>이라고 분류한다.

이상에서처럼 형이 전하려고 하는 내용과 목적에 따라서, 이것을 세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형>에 따라서는 이들 3종의 내용을 단독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두가지는 없고 세가지가 복합적으로 있는 경우도 많아, 그 중에 어느 내용이 주가 되는가에 따라 <형>의 성격이 변한다.


2. 검도형의 이합
검도형의 1본목부터 3본목까지를, 검의 술기를 가르치는 <검 술 형>으로 해서 보자. 그러면 1본목은 서로 상단으로부터의 <머리 빼어 머리>라고 하는 기술이 되고, 2본목은 서로 중단에서의 <손목 빼어 손목>, 3본목은 하단으로부터의 <찌름 돌려서 2단 찌름>라고 하는, 죽도검도에서는 대략 생각할 수 없는 무언가 이상한 <기술>이 되어 버리고 만다.
특히 1본목에서 선도가 상단의 겨눔자세를 하고 있는 후도에 대해서, 갑자기 발아래까지 쳐내리는 것 같은 타돌 동작을 하는 것은, 검의 이합에서 말해도 아무래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서로 상단으로 겨누고 있는 상대의 ‘머리’는 칼자루에 의해 방어되어지고 있음과 동시에 그 검은 언제라도 후려 내릴 위치에 있는 것이다. 검의 이합에 따르면, 상대의 겨눔자세가 무너져 있지 않은 것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발아래까지 쳐내려서 앞으로 고꾸라질 뻔하게 되는 것 같은 타격방법은 무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본래대로라면, 확실히 신체를 일으킨 상태에서 칼끝은 후도의 주먹을 가르는 위치에서 멈추는 듯한 쳐내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 2본목에서는 선도는 발아래까지 쳐내리는 듯이 하지 않고 후도의 손목을 가르는 위치에서 검선을 멈추고 있다.

거기서, 이 검도형의 1본목이라는 것은, 검도에 있어서 서로 상단의 공방이나 상단에서부터의 타돌의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1본목을 <검 술 형>으로서가 아니라, 검의 이합을 가르치는 <검 리 형>이라는 것으로 보면, 그 가르침이 떠오르는 것이다.

◈ 1본목---간합
검도형을 <검 술 형>이 아니고 <검 리 형>으로 보는 것에 의해, 검도형 1본목에 있어서 서로 상단의 이상한 공방의 의미가 보이는 것이다. 즉, 검도형 1본목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상단으로부터의 머리치기>라고 하는 <기술>이 아니고, 검도에서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간합>을 재는 방법과 그 중요성이다.
간합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는 <일족일도의 간합>을 기준으로 해서, 그보다 <먼 간합> <가까운 간합>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 간합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초심자의 단계에서는 서로 중단으로 겨눌 때의 검선과 검선이 교차하는 경우에 따라서, 이것을 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검선을 맞추지 않으면 간합을 잴 수 없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본래 간합이라고 하는 것은, 검선에 의해 재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자신과의 상대적인 거리감을 가지고 재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검도형의 1본목에서는, 스승의 위치에 있는 선도가, 제자의 위치인 후도에 대해서  <간합>의 올바른 <재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일부러 검선을  맞추지 않고 상단으로 겨눔자세를 하여, 후도가 검선에 따른 간합을 재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동시에 후도에 대해서도 중단 겨눔자세로부터 그대로의 기위로 곧바로 휘둘러 올려, 서로 검선을 맞추어 간합을 재는 것을 하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선도는 스승의 위치이므로 검도에서 통용되는 올바른 좌상단의 겨눔자세를 잡고 있지만, 제자의 위치인 후도에 대해서는, 그 단계에서 거기까지는 요구하지 않고, 단지 중단의 겨눔자세에서부터 통상의 타돌동작과 마찬가지로 곧바로 휘둘러 올리는 것만의 겨눔자세를 잡도록 한다. 이 때문에 선도가 좌상단, 후도가 우상단이라고 하는, 쌍방이 약간 다른 겨눔자세가 되는 것이다. 여담이 되지만,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채로 지도자가 마치 검도에는 검도형의 후도가 겨누는 것 같은 <우상단>이라고 하는 겨눔자세가 존재하는 것처럼 가르치면, 초심자 중에는 죽도를 이용한 검도에서도, 이 <우상단>의 겨눔자세가 통용하는 것을 생각해 버려, 상단의 겨눔자세에 대한 혼란을 일으킨다. 검도형에 있어서 <우상단의 겨눔자세>는 검도형에 있어서 간합을 가르치기 위한 편의상의 겨눔자세이고, 검도에 있어서 올바른 상단의 겨눔자세는, 선도가 잡는 <좌상단의 겨눔자세>, 혹은 좌우의 손을 바꿔 넣어서 우수우족 앞으로 좌상단과는 전적으로 역의 모양으로 겨누는 <우상단 겨눔자세>이라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

또, 선도, 후도의 쌍방이 상단의 겨눔자세로 검선을 맞추지 않은 상태 그대로 <일족일도의 간합>까지 걸어서 다가온다. 후도는 검선으로 재지 않더라도, 확실히 이 간합을 잡아서 선도와 대치할 수 있도록 되지 않으면 안된다. 선도는, 후도가 올바르게 일족일도의 간합을 재어 제압하고, 언제라도 상단으로부터 후려내리는 선의 기위를 보인다면, 이것을 <기회>로 보아 크게 오른발을 내고, 동시에 검선을 멀리 후려 내듯이 하면서 발아래까지 베어 내리고, 후도에 대해서 선도의 검선이 도달하는 최대의 간합을 가르친다. 여기서 간합의 최대치를 가르치기 때문에, 선도의 체세는 과감히 밟아 들어간 앞으로 구부린 자세가 된다. 한편 후도는 약간 몸을 빼어서, 그 검선을 아슬아슬할 때까지의 간합을 알고, 다시 거기서부터 일보 밟아 들어가서 자신의 검선이 후도의 머리 위에 도달하는 간합을 알게 된다. 이에 따라서 선도는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크게 체세를 무너뜨릴 정도로 밟아 들어가는 것에도 상관하지 않고, 후도는 이 정도로 크게 밟아 들어가지 않고도 후도의 ‘머리’를 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위 <적보다 멀리, 나보다 가까이>라고 하는 간합의 묘미를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검도형 1본목은 <간합>의 공방을 가르치는 <검 리 형>이다 라고 생각함으로서, 서로 상단으로 겨누는 것, 선도가 오른발을 밟아 나가면서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크게 발아래까지 베어 내리는 도법을 하는 것, 후도가 우상단이라고 하는 특수한 겨눔자세로부터 뒤로 물러나 빼고, 다시 앞으로 나와 선도의 ‘머리’를 베는 것 등등, 여러 가지 의문이나 모순에 대해서도 이론적인 설명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 2본목---정중선
마찬가지로 2본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검도형 2본목은, 선도가 중단의 겨눔자세로부터 후도의 ‘손목’을 베러 나오는 것에 대해서, 후도는 몸을 좌후방으로 움직여 이것을 피하고, 다시 전진하여 선도의 ‘손목’을 베고 있다. 여기서 최초의 선도의 동작을 엄밀히 <손목 베기의 기술>이라고 보는 경우, 선도는 신체를 왼쪽으로 움직여 밟아 들어가 후도의 코등이를 피하여 대각선으로부터 ‘손목’에 대해서 보다 직각 가까운 각도로 베는 방법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2본목의 형에서는, 선도는 곧바로 앞으로 나와, 후도의 도신에 아슬아슬하게 연하여 ‘손목’을 베러 나간다. 이래서는 술리상으로는 후도의 코등이에 맞추어 버리는 가능성이 높게 된다.

이것으로 보아, 선도의 동작은 반드시 <손목 베기의 칼솜씨>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생각되어진다. 그렇다면, 선도는 어디를 베고 있는 것일까. 실은, 선도는 자신의 <정중선>을 베어 보이는 것이다.

<정중선>이라는 것은, 자신이 있는 위치, 향하고 있는 방향, 상대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전후좌우의 간합 등, 그 모든 기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있는 자세의 기준을 아는 것, 그리고 자기자신이 있는 기준을 알고 있는 것, 이것을 아는 것이 정말로 <적을 알고 나를 안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검도형 2본목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선도의 ‘손목’치기에 대한 <손목 빼어 손목>이라고 하는 <기술>이 아니고, 검도의 이합이라고 해서 <간합>과 나란히 대단히 중요한 <정중선>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스승의 선도는, ‘손목’치기라는 <기술>을 가지고, 실은 자신의 정중선을 베어 보인다. 제자인 후도는, 그 정중선 베기를 좌후방으로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다시 후도 자신의 정중선을 바로 베러 나간다. 그 결과, 이것이 ‘손목’치기라는 <기술>이 되어 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도는 자신의 정중선을 베어 보임으로서, 후도에게 정중선의 위치와 중요함을 가르치고, 후도는 몸을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것에 의해 1본목에서 배운 전후의 간합을 확인하고, 또 좌우의 확인을 안다. 또 상대의 정중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에 몸을 (좌대각선 상에) 두면서 자신의 정중선 상으로부터 상대를 벗어나지 않게 하고, 그 정중선 상에서 기술을 사용한다고 하는 <정중선>을 기준으로 한 공방의 요체를 배운다.

◈ 3본목---중심
검도형 3본목은, 선도가 곧바로 명치를 찌르고 오는 것에 대해서, 후도는 좌수와 검선을 정중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게 하면서, 소위 <약하게 하여 넣는다(나야시 이레)>라는 방법으로, 가슴품 깊숙이 유인하여 넣고 나서 곧바로 다시 찌른다.
이것도 선도와 후도에 따른 상호의 <찌름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검도에 있어서 <공세>의 근간이 되는 <중심>을 빼앗기의 중요성과 그 방법을 가르치는 <검 리 형>으로 볼 수 있다.

흔히 검도에서는 <중심 빼앗기가 중요>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일족일도의 간합에서 서로 검선을 맞추고, 상대의 죽도를 옆에서부터 눌러 중심을 빼앗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검도형 3본목에서, 후도가 선도의 찌름을 약하게 할 때, 검선을 왼쪽으로 벗어나게 하여 옆으로부터 눌러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받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닐까. 즉, 검선으로 중심을 빼앗는다고 하는 동작으로 중요한 것은, 검선을 상하좌우로 움직여서, 상대의 검선을 누른다든지 턴다든지 하여 중심을 빼앗는 것이 아니고, 검선을 중심에 놓은 그대로, 곧바로 앞으로 공세해 나가는 것에 의해, 결과적으로 상대의 검선이 이쪽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버리게 하는 것이다. 이 <중심>을 빼앗는 공방의 기본원칙을 형으로 나타나게 하고 있는 것이 검도형 3본목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상과 마찬가지로, <간합, 정중선, 중심 빼앗기가 검도의 공방에 있어서 기초적 이합이라고 해서 중요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검도형 1-3본목이다고 이해하면, 상단이나 찌름 기술 등, 초등학생 중학생에서 금지되어 있는 기술이 들어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초심자부터 수련하는 것이 검도형이라는 것도 납득할 있는 것은 아닐까.

3. 검도형의 재고찰
전항에서, 일본검도형의 1-3본목은, 검도에 있어서의  기초적 이합인 <간합> <정중선> <중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단순히 이들 세가지를 가르치는 것뿐이라면,  무엇 때문에 일부러 어마어마한 검도형에 위탁하여 가르쳐 전달할 것까지 없고, 통상의 죽도 연습 가운데 기초연습이라고 해서 가르쳐 갈 수 있는 것이다.

실은, <일본검도형>의 모체가 되고 있는 <대일본제국검도형>이, 대정 초에, 아직 <무도>라고 하는 말이 일반화 되어 있지 않고, 현재의 검도도 <격검, 검술>등으로 불려지고 있던 시대에 제정되었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검술형>이 아니고, 굳이 <검도형>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이것은 왜 일까. 앞에서 기술한 검의 이합을 가르치는 <검 리 형>이라고 하는 성격은, 오히려 부가적인 것이고, 어쩌면 일본검도형은 그 이름 그대로 <검 도 형>이라고 해서 거기에 검의 <술리>를 초월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표현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도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하긴, 이 검도형이 제정 되어진 대정 시대에 있어서는 <인간이라고>하기 보다는 <대일본제국의 국민이라고> 말하는 관념이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현대에서 말하면 <일본 국민이라고> 말하는 것이 되지만, 지금의 감각으로 말하면, 오히려 <일본인이라고> 말하는 뉘앙스에 가깝다고 생각되어진다. 따라서, <대일본제국검도형>이라는 명칭은, 현재라면 <일본인의 검도형>이라는 의미인 것은 아닐까.

그럼, 이 <검도형>이 우리들 일본인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생각할 때인, 2001년 11월 25일에, 어떤 인연으로 해서 시즈오카의 검도범사 이노우에 요시히코 선생에게 눈에 띄게 되어 선생으로부터 검도형에 대한 귀중한 이야기를 들음과 동시에, 검도형을 직접 지도받게 되었다. 그 만남은 나로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 경험이야말로, 내가 진지하게 검도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하는 이노우에 요시히코 선생의 가르침을 밑바탕으로 해서, 거기에 미숙하지만 나나름의 고찰을 보탠 내용을 발표해 보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 검도형의 성립
일본검도형 <구대일본제국검도형> 제정의 경위를 보면, 1본목부터 3본목까지는 당시의 문부성이, 구제 중학교에 격검교육을 집어 넣을 때 제정된 것으로, 4본목 이하는 이것에 부가된 형태로, 당시의 무덕회가 제정했다고 한다. 즉, 명치 44년 당시의 중학교(구제)의 정과에 <격검>이 추가되어 그 지도목적과 지도방법을 통일하기 위하여, 동년 11월에 문부성 주최의 강습회가 열려서, 그 자리에서 제정되었다는 것이 <문부성제정형>의 3본이고, 그 후에 대일본무덕회가 거기에 4본목 이하를 추가하여, 대도 7본, 소도 3본의 계 10본이 된 것이, <대일본제국검도형>이라고 해서 대정 원년에 제정되고, 다시 소화56년(1981년)에 이것을 현대어로 다시 쓴 것이, 현재의 <일본검도형>이라고 하는 것이 된다.

이것을, 알기 쉽게 쓰면, <문부성제정형(대도 3본)> + <무덕회제정형(대도 4본, 소도 3본)>=<대일본제국검도형(대도 7본, 소도 3본)>이고, 이것의 현대어판이 <일본검도형>이다.

여기서, 이것을 쫓아서 우선 <일본검도형>의 1본목부터 3본목까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재의 <일본검도형>의 1본목부터 3본목까지는, 명치 말기에 당시의 중학생에 대한 정과인 검도지도의 목적을 위해, 문부성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보면, 이 형의 지도대상은 당시의 일반 중학생이고, 결코 검도전문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문부성이 만들은 이상, 거기에는 무언가의 교육적 의의가 들어가 있다고 하는 것이 상상되어진다.

그럼, 당시의 문부성이 일반 중학교생에 대하여 요구한 교육적 의의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각류파의 검술형을 모은 것이라고 말해도, 적지 않은 수의 검도의 기본기 중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상호 상단에서부터의 머리 빼어 머리> <상호 중단에서 손목 빼어 손목> <상호 하단으로부터의 찌름 돌려 찌름>이라고 하는 고유의 기술의 <형>만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중학생에게 가르치는 검도형의 1본목이 상호 상단일까.
실은, 여기에 이노우에 범사가 가르침을 준 것이지만, <정> <인> <용>이라고 하는 일본 고래로부터의 세가지의 가르침이 있다.

일본의 천황가에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황위 계승의 증거로, 3종의 신기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일본신화의 천손강림 시에, 천조대신으로부터 받은 세 개의 보물(신기)로, 팔지경, 팔척경구, 초체검의 3종이다. 그리고 이들 3종의 신기는 천황이 나라를 통치라는 데 있어 중요한 것, 즉 일본국의 통치이념이라 해서, 경(거울)은 <정(바를 정)>의 상징, 옥은 <인>의 상징, 검은 <용>의 상징이라고 한다. 지금에서도 <천손강림> 등의 이야기를 학교교육의 장에 가져간다면 일부로부터 비난을 받을지 모르지만, 당시 대일본제국헌법하의 국가원수로 있는 천황과, 그 천황에 의한 국가통치의 이념이, 학교교육에 있어서의 검술형의 이념으로 해서, 거기에 주입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다.

여기서, <문부성제정형> 3본은, 당시의 중학생(사족이지만, 당시의 중학생은 의무교육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진학률이 아직 낮은 시대이어서, 중학에 진학한 사람은 소위 일본의 장래를 지지하는 엘리트였던 것이다)에 대하여, 일본국가 통치의 이념인 <정> <인> <용>의 사고방식을 검술의 형을 빌려서 가르치고, 거기에 따라서 일본국민, 일본인으로서의 존재방식, 생활방식을 교육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 1본목 <정(正)>
검도형 1본목에 있어서, 선도, 후도의 쌍방이 상단으로 겨누는 것은 <정>의 상징이다. 고래로부터 <싸움>은 <정의>와 <정의>의 부딪침이다. 자신이 <정의>를 주장하여 싸운다면, 상대도 상대나름의 <정의>를 주장하여 도전하는 것이다. 가면 라이다*는 <정의>이고 거기에 대한 쇽카**는 <악>이라고 말하는 것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검도의 시합 등에서 자신의 팀은 <정의>이지만, 상대의 팀은 <악>이라는 것은 없다. 싫은 쇽카라도 쇽카나름의 정의는 있는 것이다. 농민민족인 일본인으로서는 영토의 확장은 <정의의 행위>였다. 서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면, 이윽고 경계선에서의 부딪침이 생긴다. 여기서 이기면 이기는 쪽이 <정의>이고, 진 쪽은 영토를 잃는다. 이것이 <정의의 싸움>이다. (주 * **--사전에 안나오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음)

<정의의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알고, 나를 알고, 그 상호관계를 항상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을 1본목의 형은, 검술에 있어서의 <간합>의 확인과 <선선의 선>의 기위를 통하여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스승의 위치인 선도는, 후도가 서로의 <간합(관계)>를 끝까지 보는 관찰안과 상대의 동향을 놓지지 않고 항상 선수를 취하여 대처할 수 있는 <기위>가 충실한 것을 본다면, 이것을 <기회>라고 보고, 크게 밟아 들어가면서 후도의 양 주먹과 코등이를 함께 바로 정면 양단하는 칼날로 내려 베어, 결과적으로 선도의 검선이 도달하는 그 최대의 <간합>을 후도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후도는 선도의 치고 들어옴과 그 칼날을 순식간에, 그리고 아슬아슬할 정도로 피해서, 거기서부터 밟아 들어가 자신의 칼이 선도의 두개(머리)를 가르는 일족일도의 <간합>을 배운다. 항상 <선선의 선>의 기위와 정확한 <간합>을 끝까지 봄으로서, 적의 공격에 순식간에 대응하여 격퇴하고 <정의의 싸움>에 승리하는 순간이다.

두개가 갈라진 선도는, 술리상은 그 자리에서 넘어진다.
사람에 따라서는, 선도는 넘어지지 않고, 줄줄 피를 흘리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는 것 같지만, 그런 상태로 있으면서, 선도가 타돌 직후의 검선을 내리고 약간 앞으로 숙어지는 자세를 가진채 일보, 이보 물러나는 것은, 약간 부자연스럽다. 아직 절명하지 않고 반격을 위해서 뒤로 물러난다고 말한다면, 우선은 검선을 올리고 몸을 일으키는 것이 자연스런 것은 아닐까.

거기서 나는, 선도가 후도에게 맞은 후에, 그대로의 자세로 작게 1보 물러나가는 것은, 베어진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의 <형으로의 행위>는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흔히 칼싸움 연극에서 베어지는 역이 주인공에 의해 베어지면, 그 베어진 그대로의 자세로 뒤로 물러나면서 무대의 끝으로 사라져 버린다고 하는 광경을 보는 일이 있다. 연극의 이야기 상에는 베어진 자는 그 자리에서 넘어지는 것이지만, 그래서는 베어진 사람이 무대의 가운데 여기저기 있는 것이 되어, 다음 연극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베어진 동시에 무대의 끝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관객은 베어진 역이 무대의 끝을 피했다는 것이 아니고 베어진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해석하여 연극을 보고 있다. 이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두개가 갈라진 선도는 그 자리에서 넘어지지만, 그것을 형으로서는 베어진 그대로의 자세로 1보 물러난다고 하는 행위로 표현한다. 그러나, 넘어졌다는 것만으로 절명한 것인가 어떤 것인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아직 숨이 남아 있어 반격해 올지도 모른다. 거기서 후도는 넘어진 선도에게 검선을 붙여서 <방심이 없는 잔심>을 나타낸다. 본래대로라면 넘어진 선도에게 검선을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검선을 하단으로 붙이는 것이지만,  형으로는 선도가 서 있는 그대로 1보 물러나는 것이므로, 그 안면에 검선을 붙이는 것에 의해,  이 <방심이 없는 잔심>을 표현한다. 즉 <형 상>으로는 안면에 향하여 조금 검선을 내리는 것뿐이지만, <술리상>으로는, 넘어진 선도에게 방심없는 검선을 붙이는 마음 가짐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도는 여기서부터 다시 더 1보, 그대로의 자세를 가진 채 뒤로 물러난다. 이것은 선도의 절명, 소위 <사>를 표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선도의 죽음을 확인한다면, 더 반격당할 무서움은 없다. 거기서 후도는 상단으로 휘둘러 올린다.

이 상단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선도는 이미 죽어 있으므로 반격에 대한 준비의 잔심은 없는 것이다. 또 설사 <준비>라면 하단으로 붙이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이것은 <정의의 싸움>에 확실히 이긴 것을 표현하고, 그리고 자신의 정의를 다시 확인하기 위하여, 소위 <승리의 이름 대기>의 자세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노우에 범사는 <단순한 승리의 이름 대기는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설사 정의의 싸움이었다 해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행이다. 인간이라면 정의를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고, 어쩔수 없는 살인을 범했다는 것에 따르는 참회의 기분이 반드시 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후도가 최후로 상단을 취하는 것은, <<참회>>의 기분과, 빼앗은 생명을 하늘로 돌려 보내는 <기도>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가르쳐 준 것이다. 그리고 이 <참회>의 기분이 있으므로야말로 2본목의 이념에 연결되어 간다는 것이다.

확실히, 일반 사회에 있어서도 <정의>를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은,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나 자신도 사소한 정의를 주장하는 것에 의해, 결과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아도 좋을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 버린다든지, 그에 따라서 나의 편이 될 사람을 적으로 돌려 버린다든지 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상, 결코 정의만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하는 반성을 넣어서, 검도형 2본목의 고찰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 2본목 <인(仁)>
검도형 2본목의 중단의 겨눔자세는 <인>의 상징이다. <인>이라는 것은, 타인을 귀중하게 하는 기분, 소위 자비인애의 마음이다. 1본목이 서로 정의를 주장하여, 승리야말로 유일의 것이라고 <싸움>의 자세로 임하는 것에 대하여, 2본목의 중단 겨눔자세는, 1본목에서 배운 <간합>을 중요시 하고, 상대와의 상호관계를 다시 중시한 공방일치의 겨눔자세이다. 스스로 나아가 싸움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싶은 기분이 겨눔자세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결코 <막는다>나 <피한다>고 하는 기분은 아니다. 겨눔자세는 조용하다 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싸움터에 있고, 항상 상대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일어난다면, 곧바로 기선을 제하여 적을 격파하는 <선선의 선>의 기위이다. <물에 떠있는 물새의 몸은 겨눔자세로 발은 마음이다> 이 중단의 겨눔자세가, 검도의 언제나의 겨눔자세, 기본의 자세로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승의 위치인 선도는, 후도의 이 중단 겨눔자세와 기위가 충실한 순간을 잘 보고, 그것을 <기회>로 보고, 후도의 ‘손목’을 베러 나간다. <인>의 이념을 가진 2본목의 기술에는, 1본목같은 살인의 칼날은 없다. 후도가 미숙하면 팔 하나를 베에 떨어뜨린다는 칼솜씨이다. 따라서, 1본목 같은 아래까지 베어내리는 <베어내리기>의 도법은 아니고, 팔을 베어 떨어뜨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상처내기>의 도법이 된다.

후도는, <왼발부터 오른발을 데리고 좌 대각선 뒤로 물러난다>고 하는 동작에 의해, 선도의 치고 들어오기를 피한다. 1본목처럼, 힘과 힘이 바로 정면으로부터 맞부딪치는 듯한 싸움으로는, 힘이 이기는 쪽이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승리를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정중선을 보지한 그대로 상대의 정중선을 벗어난 위치에 선다면, 이 시점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서는 것이 가능하다. 이 몸의 운용이, 무술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중선을 이용한 몸 운용에 의해, 상대보다 우위에 선다면, 거기에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1본목에서 생긴 <참회>의 기분이, 마음의 여유에 동반하여 <자비인애>의 마음이 되어 소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의 이념이다.

일반적인 기본기에서는 <손목 빼어 머리>가 당연한 것인데 대하여, 검도형 2본목이 <손목 빼어 손목>이 되는 것은, 거기에 <인>의 이념, 자비인애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머리’를 베어, 1본목과 같이 상대를 베어 죽일 수 있는 체세를 만들면서도, ‘머리’를 베지 않고 ‘손목’을 베어 떨어뜨리는 것만으로 승부를 마친다. 즉, 1본목에서는 적의 <목숨>을 빼앗아서 승리하지만, 2본목에서는 <목숨>까지 빼앗지 않고, 그 전투력을 빼앗는 것만으로 승리한다. 상대는 죽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손목을 베인 체세 그대로 <방심없는 잔심>을 나타낸다. 검선을 안면에 붙인다든지 상단으로 휘둘러 올린다든지 하는 쓸데없는 동작을 필요하지 않다.

이노우에 범사로부터는, 1본목이 <싸움에 승리하기 위한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형이라고 한다면, 이 2본목은 <기술로부터 검도 본래의 길로 나아간다>는 그 입구를 가르치고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기술로부터 길(도)로, 검도의 수행은, 이 2본목의 형의 수련을 통해서, 검도 본래가 지향하는 <도>에로 향한 3본목의 수행에로 들어간다.

◈ 3본목 <용(勇)>
검도형 3본목, 하단의 겨눔자세는 <용>의 상징이다. <용>이라고 하는 것은, 기력이 몸 가운데 가득찬 상태로서,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겁먹지 않고 나아가는 강한 마음이다. 그러나 그 <강한 마음>을 겉으로 나타내 버리면, 그것은 단지 만용이 되어 버린다. 진정한 용 <대용>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냉정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부동의 마음>이다.
하단의 겨눔자세는 <겨눔이 있고 겨눔이 없다> 소위 <유구무구(얽을 구)>의 겨눔자세이다. <싸운다>든가 <싸우지 않는다>든가, <이긴다>든가 <진다>든가. 이러한 것에 일체 잡히지 않는, <무심의 겨눔자세> <자연의 겨눔자세>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용>의 마음은 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부동심>이다. 그러나, 마음이 정지해 있는 <지심>은 아니다. 상대의 마음의 움직임을 적확히 잡아, 각일각 변화하는 주위의 정세에 대해서, 순식간에, 그러나 조용히 결코 당황한다든지 달린다든지 하는 일 없이 자연히 대처하여 가는 <무심>의 마음이다.

간합에 접한 선도는, 후도의 <부동심>을 시험해보려고, 검선을 조용히 올린다. 후도는 이에 자연히 반응하여, 후도의 동작에 찰싹 붙어 추종한다.

조금 여담이 되지만, 검도형을 가르치는데, 선도는 스승의 위치, 후도는 제자의 위치라고 하여서, 선도의 동작이 먼저, 후도의 동작이 뒤라고 흔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후도는 약간 늦게......>라고 하는 표현을 가지고, 선도와 후도의 동작에 시간차를 가지도록 지도하는 선생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것은 아닐까. <후도가 뒤>라고 하는 것은, 후도가 선도에 앞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선도보다 늦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생각한다. 후도의 동작이 선도의 동작보다 늦는다면, 물리적으로 말해서, 후도가 선도가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후도가 뒤>라는 것은 마치 물체본체와 그 그림자 같은 관계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피터팬의 만화 애니메이션이 아닌 한, 그림자는 결코 본체보다 앞서 움직이는 일은 없다. 선도의 동작에, 마치 그림자처럼 추수하여 대처한다. 휘둘러 털더라도 결코 늦는 일 없이 찰싹 붙어 가는 것이다. 이런 상태야말로, 그것이 <후도의 공세>라고 해서 살아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이야기를 본래대로 돌아가 보자.
중단까지 검선을 올려온 선도는, 후도의 마음이 전혀 움직이는 일 없이 자연히 추종해 오는 것을 간파한 이상, 그것을 <기회>라고 보아, 후도의 그 <부동의 마음>을 곧바로 찌른다. 여기서 후도의 마음이 움직여져, 쓸데없는 동작을 보이면 후도의 미숙이다. 그러나, 후도는 전혀 움직이는 일 없이, 선도의 검선이 도달하는 간합을 적확히 간파하여, 스스로의 정중선을 확실히 계속 지키면서, 가볍게 들어온 찌름을 약하게 함과 동시에, 후도의 마음을 다시 찌른다.
후도의 마음을 움직일 요량으로 찌른 선도의 마음이 역으로 움직여져, 선도는 좌우 자연체의 겨눔자세로 간신히 후도의 검선을 계속 막고 뒤로 물러난다.  그러나 후도의 마음과 검선은 전적으로 부동 그대로 선도의 마음과 중심을 계속 공격한다.

정신적인 압도(쿠라이 즈메)로 공세를 당해서, 얼굴의 중심에 찰싹 붙게 검선이 붙여진 선도는 완전한 패배다. 본인뿐만 아니라, 누가 보아도 완벽한 후도의 승리다. 그러나, 선도의 몸은 어디에도 상처를 받지 않고 있다.

다시 여담이지만, 여기서 검도형의 공방을 검도의 시합에 견주어 보자. 만약 검도형을 심판한 경우, 1본목이라면 망설일 것도 없이 후도의 <머리>에 기가 올라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2본목도 후도의 <손목>에 기가 올라간다. 그럼, 3본목의 경우는 어떨까. 후도의 기술에 기를 올리는 것이 가능할까. 3본목에서는 확실히 후도가 이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검도경기의 룰에서는 기를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노우에 범사는, 여기가 스포츠 경기라고 하는 검도와 무도라고 하는 검도의 경계이고, 이 검도형 3본목의 수행에 의해 <술>로부터 <도>에 이르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최근, 검도의 올림픽화가 의론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올림픽 격투종목처럼, 만약 검도의 승패를 포인트제로 해서, 그 기준을 스포츠적인 관점에서 만든다면, 검도형 1본목 같이 확실히 상대를 숨을 끝내주게 하는 강렬한 <머리>치기에 대해서는 5포인트를 주고, 2본목처럼 ‘손목’을 치는 것만으로 아직 상대가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는 2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3본목처럼 상대를 추격해 들어가 물러나게 하는 것은 가능해도, 상대의 어디에도 검이 닿지 않은 상황에서는 0포인트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무도적 감각으로서는, 1본목처럼 상대의 목숨을 뺏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것은, 아직 미숙하므로 1포인트가 되고, 2본목처럼, 상대에게 상처를 주어도 , 목숨까지 빼앗은 것은 아닌 경우에는 3포인트, 3본목처럼, 상대를 일체 상처를 입히는 일 없이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5포인트라고 하는 판정이 된다.
현시점에서, 검도의 올림픽화에 대해서는 굳이 찬부를 말하지 않지만, 설사 올림픽화가 되는 경우에는, 이 차이점을 세계에 어떻게 이해시킬 것일까, 그리고 승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에 이 차이점을 어떻게 반영할까가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시 본제에 돌아가지만, 이처럼 검도수행의 최종목표가 검도형 3본목에 있다고 하면, 이것은 적을 죽이지 않고 상처도 입히지 않고 이기는 경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적을 <살려서> 이기는 것이 되고, 다시 바꾸어 말하면 <상대의 몸을 멸하지 않고 살려서> 이기는 경지를 목표로 하는, 소위 <활인검>의 사상에 연결이 된다.
많은 무도나 무술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느 쪽이냐 하면, <적을 제압하여 내 몸을 보호한다>고 하는 <호신술>이라고 하는 의미를 강하게 하면서 현대에 계속 받아 들이고 있는데 대하여, 검도의 경우에는, 일본도라고 하는 사람을 살상하기 위한 무기를 취급하면서, <내 몸을 걸고, 목숨을 걸고의 수행>의 끝에 있는 것은 <내 몸이 아니고, 적의 몸을 보호한다>고 하는 곳에 도달한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이상과 마찬가지로, 대일본제국헌법 하에서, 당시의 중학생 교육을 위해서 작성되어진 <문부성제정형> 3본은 대일본제국의 국민이라기 보다는, 무사라고 하는데 있어서 당연히 있어야 할 자세, 목표를 지향하는 경지를 가르쳐 주었다. 대단히 숭고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사의 흐름은, 이 검도형에 담겨진 <숭고한 정신>이 없는 듯이 해서, 검도를 단순히 전쟁에의 도구로 이용해 버리고 있다.
후년, 나카야마 학쿠도 선생이 <검도형이 올바르게 전해지고 있지 않다. 지금의 검도는 형의 마음이 없는 형없기 다>라고 말하며 탄식한 것은, 이러한 것에도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하 다음 호에)
***위 글은 경남검도회 소속 김명서님께서 번역해 주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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