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한장교씨 공인4단 사범자격 획득

볼 수는 없지만 "감각의 칼끝"은 살아있다


"검도에는 검이 가는 길이 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고 했던 그 사람. 시각장애 검도인 한장교(57)씨가 공인 4단을 따냈다.

지난 11월 24일 대한검도회가 주관한 승단 심사에 응시한 한씨는 이달 초 합격통지를 받았다. 4단 승단 심사에는 65명이 응시해 35명이 합격했다.

선천성 망막색소 변성증으로 1996년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한씨는 93년 검도에 입문했다. 98년 3단이 된 뒤 4년 만에 사범 자격이 주어지는 4단에 오른 것

이다. 98년 3단을 딸 당시에는 희미하게나마 물체의 윤곽이 보였지만 지금은 "불이 켜졌다, 꺼졌다" 정도만 감지할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다. 사실상 전맹

(全盲)인 셈이다.

미8군 건설자재 납품업체를 운영하는 한씨는 심사를 앞두고 피나는 준비를 했다. 자신이 수련하는 서울 노량진동 검심관 박성국 사범과 함께 토.일요일에

는 점심을 시켜먹으면서 하루종일 검을 내리쳤다.

본국검법.연격(약속대련).연습(자유대련) 등 정상인과 똑같은 시연을 해낸 한씨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검도인으로서 정신과 칼끝이 살아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씨는 "당장 도장을 차릴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시각장애인을 무료로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소리와 느낌만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경지에

까지 오르는 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99년 2월 중앙일보에 한씨의 사연이 처음 소개된 이후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나도 검도를 하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문의 전화를 해왔다

고 한다.

한씨는 더 나아가 "맹인 검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4년 전보다 시력은 더 나빠졌지만 감각은 더 좋아졌다. 지금은 눈을 감고 하는 게 더 편안하고 집중이 잘된다"고 말하는 한씨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

의 속임 동작에 넘어가지 않는 이점도 있다. 보통은 상대가 트릭을 쓰면 움찔하며 허점을 보이게 된다"고 귀띔했다.

자신과 같은 망막색소 변성증을 앓고 있는 아들 수석(22)씨도 검도 2단이다. 야맹증이 심해 군 면제를 받은 아들을 보면 한씨는 항상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수석씨는 "아버지 사는 모습을 보니 하나도 걱정 안돼요. 절대로 걱정하거나 미안해하지 마세요"라며 오히려 위로한다. 이런 아들과 가끔 맥주 한

잔씩 나누는 재미로 한씨는 시름을 잊는다.

후배 검도인과 장애인들에게 그가 한마디를 던졌다. "네버, 네버 기브업. 용기를 잃지 않으면 길은 반드시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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