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40대 초반이었을 때의 일이다.

호리구찌 선생이 히로시마에 오셨을 때

지도연습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세메로 거리를 좁혀들어가려고 하면

그 때마다 선생은 칼끝으로 중심을 지켜서

도저히 치고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니, 그냥 대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슬금슬금 물러날 수밖에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서

이번에야말로 기백을 집어넣어보려고 했었지만,

그때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4,5회 반복하고 그 날의 연습을 마쳤다.



이무렵 나는 세메아이의 중요성,

세메아이에서 이겨서 타격을 하는

승타법의 유효성을 깊이 깨닫고 몰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듯 발전된 나의 검도를 선생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칼을 맞추어서는 고작 호흡만 가빠지고

땀만 비질비질 흘렸을 뿐, 부끄러울 만큼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생에게는 대학시절(국사관대학)에도 지도를 받았고

이후 히로시마에 오실 때마다 몇번인가 칼을 대한 적이 있었다.

그 때에는 나름대로 선생의 머리도 치고 손목도 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똑바로 치고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지 생각이 혼란스러웠다.



10년쯤 전에 나까니시(中西) 범사가 선생에게 지도연습을 들어간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에 나까니시범사 역시 선생에게 한판도 내지 못한채 구석으로 밀리는 것이었다.

나까니시 선생은 나보다 연령이 10년 정도 위였지만,

검도의 레벨은 그 이상의 차이가 나는 분이셨다.

호리구찌선생은 상대를 항상 같은 방법으로 다루지 않으셨다.

레벨이 다른 상대에게 각각의 이해하기 쉬운 검도의 본질을 지도하고 계셨다.

결국 그런 것이었다.

선생의 검도는 정말 알수 없는 깊이와 진정한 강함이 있었다.



연습이 끝나고 선생의 거처로 인사를 갔는데

"많이 좋아졌구먼, 진짜검도(本物)에 많이 접근하고 있어요"

라고 말씀하셨다.

한 대 제대로 때리지도 못한 부끄러운 검도에 대해서

검도다운 검도라고 평을 해주시다니...

진짜검도(本物)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검도를 대할 때마다 늘 이런 화두를 떠울리게 된다.

검도관이란 것도 단계적으로 변화해가는 것 같다.

(후지와라 타카오)

-녹검의 검도이야기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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