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반대로 [허락해서는 안 될 세 가지]가 나오게 됩니다. 검도의 타돌에 있어서는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되
는 것입니다.
하나는 상대가 받아 저지한 순간입니다. 이 순간 소위 제2의 칼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한번 쳐
서 상대에게 막히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갑니다. 또는 여전히 똑같은 곳을 공격합니다. 그것은 어리석음의 극치
입니다. 머리 기술로 갔으면 아래 기술로 가야 합니다. 검도의 타돌은 원 운동이기 때문에 머리는 당겨베기(引
き斬り)로 자르는 것입니다. 원 운동이라면 위를 공격해서 상대에게 막혔다면 자연스럽게 밑으로 갑니다. 손목
을 공격했는데 상대가 빼거나 받아버리면 위로 갑니다. 또는 거리가 멀면 손목→손목→머리로 갑니다. 이것이
칼의 길(太刀筋)입니다. 지금의 검도 는 찌르듯 쳐들어갑니다. 찌르듯 들어가는 기술은 원 운동이 아니기 때문
에 다음 기술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학생의 시합을 보면 일족 이도 즉 한 스텝에 두 번 세 번 치고 있지만 그렇게 하면 잘라지
지 않습니다. 선생은 일족 일도, 한 발에 한 번 치는 것, 이것이 검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배웠던 검도는
[자르는 검도]였는데, 지금의 사람들은 [맞추는 검도]로 되고 있습니다. 전일본선수권을 보면, 나는 그런 식으
로 맞추어 낼 수는 없지만, 검도가 아닌 검도시합을 매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3불허의 두 번째는 움직임의 기색(起こり頭)입니다. 오꼬리는 몸의 오꼬리에 대한 것인데 더욱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허리의 움직임과 손잡이(手元)의 오꼬리.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경우 그 부분만을 보아
서는 안 됩니다. [먼 산 보기]와 미야모토 무사시의 말대로 [紅葉 보기]라고도 말합니다. 가을에 단풍잎을 하나
하나 보면 제 맛을 느끼지 못 합니다. 그래서 멀리를 가깝게 볼 것. 상대에게는 반대로 보이게 하는 느낌으로 자
세를 취하면 참으로 그러한 자세로 된다고 합니다. 똑같은 신장이라도 상대에게는 멀고 자기에게는 가깝다. 그
러한 것은 실제로는 없겠지만 심리적으로 그렇게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가는 듣지 못 했습니다. 禪과 같은 문제입니다. 公案을 던져주셨기 때문에 어떻
게 자신의 자세가 상대에게 크게 보일 수 있을까를 연습을 해서 생각했습니다. 자주, 상대의 죽도가 크게 보인다
고 말들 하지요.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연습의 양에 의해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도 다
까노 선생에게 들어가면 선생의 죽도가 팍-(힘을 주어 단숨에, 강력하게 순간적으로) 좁혀 들어와 큰 파도에 휩
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몸이 순간 정지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개를 허락하면 안된다는 점과 앞에서 언급한 6개의 타돌의 기회. 이것을 쌓아 가면 三殺法이라는 것이 이
해되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