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배우는 리더십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8.4.1)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프로그램 안내장을 살펴보라.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공연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이름이 나와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극단에서는 배우를 인적자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불렀다가는 아무도 밑에서 일하지 않을 테니까.
안내장을 유심히 살펴보라. '관리자'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을 책임지는 사람들한테만 쓰인다. 무대 관리자, 조명 관리자 등으로.




"이 연극의 타겟이 원래는 10~20대입니다. 그런데 오늘 모임에서 함께 오신 관객층이 40대 이상이어서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지난 연말 오래간만에 찾은 연극무대. 공연이 끝나고 의례 그렇듯 배우와 스태프들이 무대에 나와 인사를 했습니다.

한 배우는 인사말을 하면서 자신이 공연중에 공감대 형성을 위해 일부 대본에 없는 연극을 했다고 말하더군요. 배우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현장 상황에 맞게 알아서 변화를 주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연출자도 배역을 맡은 이가 알아서 해내리라고 무대 뒤에서 믿고 있었을 겁니다. 그 연출자는 이렇게 말하는 배우들을 지켜보며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성과를 내는 조직, 리더의 모습입니다.

경영구루 중 한 명인 찰스 핸디는 조직이론이나 리더십을 알고 싶다면 극장에 가보라고 말합니다. 공연과 관련된 사람은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모두 프로그램 안내장에 이름이 나와 있지요.
그리고 관리자는 특별히 강조되어 표시되지 않으며,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배우들의 이름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물론 극단이 배우를 '인적자원'이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배우들은 감독의 지도를 받지 결코 '관리'를 받지 않으며, 감독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가 알아서 잘 해내리라 믿는다고 핸디는 말합니다.
그리고 극장에서는 공연이 끝나면 즉시 관객에게 '평가'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연말 인사고과 때까지 평가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연말에 보았던 연극을 떠올리며 핸디가 말한 '극장에서 배우는 리더십'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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